캐나다 살기

[캐나다 살기 #1] 시작은 어렵지만, 결국 시작이 반이다.

Kay Im 2025. 7. 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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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았다. 아니 다 끝난것이 아니니 '쉽지 않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것 같다.

 

지난 5주간의 짐정리는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지난 1주일은 인생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중 하나였다. 이사가 아니라 이민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거면 이사업체에 돈을 주고 그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물론, 이사후에 자잘한 짐정리들은 우리의 몫이지만, 이민을 가기위해 짐정리를 하는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사업체가 해야할 일들을 내가 그리고 아내가 했기 때문이다. 

 

4년전, 지금 살고있는 집에 입주했을때는 세입자가 살고 있지 않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집으로 들어갔기에 어떤 가구도 있지 않았다. 그리고, 4년후인 오늘 아내와 나는 4년전 이 집에 들어왔던 처음 상태 그대로 돌려놓고 나왔다. 모든 짐들을 우리가 다 정리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는 허리와 무릎 상태가 최악이었고, 막판 5-6일을 남겨두고는 잠도 길게 자지 못했으며 아침부터 자정까지 하루종일 일만 했다. 

 

대부분의 가지고 있던 짐들은 왠만하면 다 버렸다. 개중에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중고마켓에 헐값에 팔기도 했으며, 무료 나눔으로 처분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경험했다. 무엇하나 쉬운것이 없었으며, 무조건 발품을 팔거나 시간을 투자해야 해결이 되는 것들이었다. 

 

사실 물건들을 처분할때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되었던 것은, 어떤 물건을 바라보며 이것을 버려야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기부를 해야할지 그것도 아니면 중고로 팔아야할지를 결정하는 그 순간이었다. 물건의 상태는 아주 멀쩡하고, 누군가에게 팔아도 어느정도의 값어치는 할 것 같은 그런 물건들을 집을 비워줘야 하는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결정하는 그 순간이 시간적인 소모가 가장 많았던것 같다. 그 과정에서 물건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와 여러번 커뮤니케이션 하고 만나야 했던 그 시간들이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집을 처음의 상태 그대로 되돌려놓은 시간에서 아내는 다치기도 했고, 폭염 속에 땀을 무지하게 흘리며 여러 곳들을 뛰어 다녔다. 심지어 짐을 옮겨 놓기 위해 한번에 120km의 거리를 운전했던 적도 있었다. 무엇하나 쉽게 해결되는 것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기쁨을 찾기로 결심했었다. 이 과정이 우리 가족이 타국으로의 먼 이주를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이왕 하는것 즐겁게 하기로 말이다. 무언가가 잘 되지않아 짜증도 났었고, 화가 치밀기도 했으며 심지어 스스로에게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집을 비워주기로 한 당일 아침, 긴장감 속에 모든것들을 부랴부랴 다 마치고 집을 나섰다. 입주청소가 8시에 들어온다고 해서 오전 7시 40분 차에 나머지 짐들을 테트리스 블럭처럼 쌓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뒷자석에도 짐이 꽉 차 우리 두 아이들이 제대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오후에는 가족들을 태우고 전남까지 이동해야 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뒷 좌석에 앉을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커다란 박스 2개에 많은 짐들을 싣고 우체국에서 택배로 보내기로 했다. 문을 여는 오전 9시가 되기도 한참 전에 우체국에 도착해 커다란 두개의 상자들을 부쳤다. 그랬더니 불편하기는 했지만 두 아이가 딱 붙어 앉을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앉은 왼편 좌석과 바닥에는 수 많은 짐들로 가득차 차의 뒷 유리까지 다 가려버렸다. 마치 난민 가정이 집도 없이 차로 떠돌아 다니는 그런 모습을 연상케했다.

 

집은 나섰고, 우체국에 짐도 부쳤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아직 할 것들이 남아있었다. 수도세, 전기세, 도시가스, 은행, 부동산 등등 각종 관공서에 연락을 해 요금을 정산하는 일도 쉽게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해결해야 할 방법들을 잘 몰라 인터넷에 검색하여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전화를 걸었지만 쉽게 연결되는 곳도 없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거쳐야 할 단계들이 너무나 많았고 한번에 해결되는 것 역시 없었다. 또 다시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니고 해결해야만 했다. 땀이 비오듯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흘러내렸다. 

 

이 동네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마음이 섭섭해져왔다. 늘 다니던 이 길, 식당들, 카페들, 그리고 사람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점심 시간이 왔다. 마지막을 기념이라도 하듯 오늘은 살짝 무리를 해서 조금은 비싼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도 그리고 아내도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오후 3시가 가까워져 갔다. 시원한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야.'

 

이불 마저 다 처분해 버린 전날밤 맨 바닥에서 덮는 이불도 없이 겨우 5시간 잤던터라 수면부족 상태를 겪었고, 또 지난 며칠간 긴장한 상태로 지내다 갑자기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이제 적어도 5,6시간은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것을 알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잠 들면 그만이지만, 난 그 시간 내내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한다. 그치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원한 쇼핑몰을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폭염과 높은 습도로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짐으로 꽉 차있는 차에 올랐다. 뒷 자리에 앉은 두 아이들은 겹겹이 쌓여있는 수 많은 짐들을 반대편으로 밀며 조금이라도 앉을 공간을 만들었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괜히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명의 사람과 족히 100kg도 넘을것 같은 짐들로 차가 힘들어 하는것 같았다. 에어컨을 풀 가동하고 액셀을 천천히 밟았다. 지금부터 펼쳐질 우리의 여정에 첫 발걸음이 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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