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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의 세상을 보는 noon
여행 본문
Photo by Kay Im
Tsagannuur, Mongolia
아침과 새벽의 사이, 완전히 동이 트기 전 아직은 어둑어둑한 시간. 두터운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신호등을 건너 터미널안으로 바삐 들어간다. 난 승차권 창구쪽으로 걸어가 화천행 승차권 한 장을 구입했다. 버스 출발전 약 15분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다. 난 터미널로 들어오기 전 포장마차에서 산 김밥 한 줄의 은박 포장을 벗겨 차디찬 김밥 하나를 입에 넣는다. 김밥 전문점에서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 정성스럽게 만든 그런 김밥이 아닌, 누가봐도 싸구려 재료로 만든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그런 김밥이다. 그렇지만, 버스에 오르기 전 허기질 것을 고려하여 난 뭐라도 배에 채워넣어야 긴 시간을 버털 수 있을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나와 내가 타야할 36번 승차홈을 찾았다. 숫자를 보니 내가 서 있는 1번 승강홈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버스 출발 정확히 2분 30초 전이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승차홈을 표시해 놓은 숫자의 번호가 36에 점점 가까워져 간다. 난 승차홈의 번호가 36번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버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님에게 승차권을 내민다.
"화천 맞죠...?"
버스에 올라타며 난 별 뜻 없이 물었다. 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듯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다.
버스에 올라 내가 앉아야 할 9번 좌석을 찾았다. 앞에서부터 1번, 2번...그리고 8번. 그런데 그 다음번호부터는 숫자가 지워져있다. 난 그냥 뒤쪽으로 들어가 왼편 아무 창가석에 자리를 잡았다. 버스 앞쪽 천장에 부착되어 있는 전자시계가 출발 시각 정각을 표시하고 있다.
45석의 커다란 시외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서 총 3명의 승객이 앉아있다. 앞쪽에 젊은 여자 승객 1명, 가운데 쪽에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듯한 남학생 1명 그리고 뒤편에 자리를 잡은 나, 이렇게 넷이다. 하긴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강원도 화천행 버스에 올라탈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승객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버스는 서서히 출발준비를 하며 차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오른편 창가에 앉은 그 남학생은 창 밖으로 여자친구로 보이는 한 여학생에게 손을 살며시 흔든다.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무척이나 아쉬움과 동시에 남자친구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버스는 천천히 터미널을 빠져나간다.
화천 직행버스인줄 알았는데, 버스는 청평 버스터미널에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버스가 청평읍에 접어들고 터미널에 선다. 나를 제외한 버스안의 유일한 승객인 두 명 모두 다 하차한다. 이제 나는 이 넓은 버스의 혼자 남은 유일한 승객이 되었다.
1999년 12월 14일 이른 아침.
머리를 짧게 자른 나는 야구모자로 짧은 머리를 가리고 두터운 겨울 파카를 입은채 춘천행 기차에 앉아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꽤나 매서웠던 추위가 춘천으로 향하는 나를 맞이했던 것 같다.. 난 차창 밖으로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과 황량해 보이던 산들을 바라보며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2015년 12월 14일 아침.
나는 경춘가도를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물론 기차와 버스라는 서로 다른 교통수단으로 달리기는 하지만,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대로인듯 느껴진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16년전 오늘 내가 느꼈던 감정과 16년이 흐른 지금 내가 느껴고 있는 감정이 다르지 않을까.
16년전의 오늘은 화요일이었다.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하던 아들과 함께 기차에 앉아 계시던 그 당시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과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내 머리를 스치고 간다. 착잡한 심정일거라 생각하셨던 부모님은 보충대로 들어가기전 나에게 소양강을 보여주고 싶으시다며 나를 소양강으로 데려가 주셨다.
그 당시 우리 집의 경제상황은 몇 해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터라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었다. 급기야 내가 군에 입대할때가 되어서는 어쩌면 부모님께서는 양가 감정을 갖지 않으셨을까. 하나 있는 아들을 처음으로 군으로 입대시킬때의 걱정과 착잡함 그리고 그 당시 계속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던 경제상황에서 책임져야 하는 자식 한 명이 약 2년간 집을 떠나있는다는 약간의 다행스러움같은 그런 감정이 아니셨을까.
부모님과 소양강에서 작은 통통배를 타고 외딴 섬마을에 들어가 그 곳에서 부락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 섬마을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을 보았다. 육지에서 벗어나 그런 생활들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처음 본 나에게는 그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곳을 나와 다시 춘천쪽으로 들어와 우리는 부대 근처 어딘가에서 점심으로 닭갈비를 먹었다. 그 시간 손님도 거의 없어 썰렁했던 그 식당은 내 마음을 더 황량하게 했다.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는 많은 말씀은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16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그 상황들이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군에 다녀온 남자라면 자신이 입대한 날의 기억은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참 신기하게도 난 16년전의 오늘과 같은 날짜인 12월 14일, 같은 곳을 달리고 있다. 계획된 여행도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서울 양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로는 서울에서 춘천까지의 운행시간 및 거리가 놀랍게 단축되어 사람들은 낭만의 국도인 경춘가도를 달리는 일이 점점 줄었지만, 나는 여전히 빠름과 편리함을 주는 고속도로보다 16년전 오늘의 기억을 갖게 해준 이 국도가 좋다.
굽이굽이 이어진 높은 산들과 그 아래 잔잔하게 깔려있는 청평호의 아름다운 모습이 적절히 한 폭의 그림처럼 내 눈에 들어온다. 복잡한 일상과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크나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오전 9시쯤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춘천이라 씌여진 이정표를 지나 춘천의 한 변두리 지역을 통과한다. 그리고는 곧 춘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승객들을 태운다. 그리고는 목적지인 화천을 향해 또 다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