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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의 세상을 보는 noon
어린시절 먹던 바로 그 햄버거다 본문
골목이라고 하기엔 도로의 폭이 조금 더 넓어 보이는, 수 많은 신축 빌라들 틈 사이로 지은지 적어도 4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옛날식 주택들이 중간중간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주택들 사이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한 작은 식당이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 이 작은 식당 입구에는 지금은 제작 되지도 않는 90년대를 느낄 수 있는 햄버거 포스터가 붙어있다. 빛이 바래 원래의 색깔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이 포스터에서 이 가게의 내부를 예상할 수 있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점심시간이 한창임에도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메뉴판도 따로 없고 주방을 바라보는 쪽에 햄버거 메뉴 3가지가 적혀있는것이 이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전부였다. 물론, 80년대 찻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몇몇의 차 종류와 옛날식 커피도 적혀있기는 했으나 이 식당의 주 메뉴는 햄버거였다.
메뉴의 가격을 보니 2024년 대한민국 어느 식당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가격을 마주했다. 치즈버거의 가격이 2,500원. 모든 차 종류와 커피는 모두 1,000원이었다. 그것도 시골이 아닌 서울의 한 동네의 식당의 가격이다. 포스터에는 감자튀김과 콜라가 포함된 햄버거 세트의 가격이 2,000원이었는데 아마도 세월의 흐름으로 물가 상승률이 반영된 듯 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더라도 수제 햄버거의 가격이 2,500원은 놀랄만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이 식당의 한가지 독특한 점은 현금결제만 가능하다는 것. 가게의 입구에 '현금결제'라는 작은 문구가 붙어있다. 아마도 그걸 모르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꽤나 있을터인데, 괜한 수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붙여놓은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장님은 70은 훨씬 넘어보이시는 할머님이셨다. 사실 100세 시대를 사는 요즘 70대를 할머니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겠지만, 어쨌든 느낌상 이 곳에서 오랜 세월 장사를 하신것 같다. 난 치즈에그버거 한 개와 캔콜라 하나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이 작은 식당에는 4인용 테이블 4개가 전부였다. 벽에는 그 흔한 그림 액자나 메뉴판도 없었다. 마치 80년대에서 90년대초반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듯 했다. 사장님께서는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작은 화분 몇 개가 놓여있었다. 보통의 식당에서는 사실 찾아볼 수 없는 인테리어다.
드디어 주문한 치즈에그버거와 작은 캔콜라가 나왔다. 한 눈에 봐도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웠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건 요즘 우리가 먹는 그런 햄버거와는 달리 옛날 우리의 엄마들이 집에서 만들어주시던 햄버거였다. 잘게 자른 양배추와 케찹이 들어가 있는 그런.
이 집의 햄버거 맛은 어떨지 기대감을 가지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맛있었다.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맛있었다. 다음에 또 오고싶을만큼 맛이 있었으며, 집에서 고기를 다져 부친 패티와 계란 후라이와의 조화도 일품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사장님께 여쭈었다. 혹시 이 자리에서 얼마나 가게를 운영해 오셨느냐고. 사장님께서는 이 곳에서 90년대 초반 가게를 시작하셔서 그때의 인테리어 그대로 약 35년간 운영해 오고 계시다고 하셨다. 처음에 시작하셨을때는 그래도 젊으셨기에 돈까스나 샌드위치 또는 간단한 밥 종류도 하셨으나,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어 메뉴를 햄버거 하나로 정리하셨다고 하셨다.
난 햄버거가 너무 맛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무엇보다 옛날 어릴때의 향수가 묻어나는 가게의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셨다. 만족스러운 식사에 어릴적 옛 향수를 느끼게 해 준 대가가 고작 3,500원이라니, 사장님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드는건 왜일까. 요즘같은 시대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야금야금 가격을 올리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공통된 마음일텐데, 돈에 연연하지 않아 보이시는 이 어르신의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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