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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기

#26. 세상은 넓고도 좁다

Kay Im 2025. 9. 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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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에셀이가 첫 등교를 하는 목요일 아침, 난 에셀이를 차에 태우고 에셀이가 다니게 될 Bryne Creek Community School로 함께 갔다. 첫 수업의 시작시간이 8시 37분이다. 8시 35분도 아니고 왠 37분이냐고? 이틀전 교감선생님과 상담할때 내가 물었던 질문이다. 학사일정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재량으로 쉬는날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위해 수업의 시간을 몇 분이라도 땡겨서 1년의 전체 수업시간에서 재량휴업일을 만들어내기 위한 학교의 방안이라고 했다. 암튼, 첫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고, 수업에 들어가기전 아카데믹 카운셀러를 만나 가을학기 시간표를 받았다. 그리고 첫 수업인 과학교실로 향했다.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얼굴에서 활기가 넘쳐났다. 한 ELL선생님께서 우리를 배려해 과학교실까지 직접 데려다 주셨다. 과학수업은 1번 Hall의 맨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미 도착하여 교실에 앉아있었고, 나와 에셀이를 본 과학 선생님께서 새로 온 학생임을 직감하고 교실밖으로 나와 우리를 맞이하셨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부터 이 학교에서 첫 학기를 시작하게 된 8학년 임에셀이라고 소개했다. 선생님은 백인 남자선생님이셨고, 자신을 Ben Vanry라고 소개하셨다. 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선하고 좋아보이셨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캐나다에 온지는 이제 한달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한국의 어느도시에서 왔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갑자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본인은 작년에 이 학교에 교사로 오기전까지 서울에서 7년간 영어강사로 살았으며, 대치동에서 살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부인이 한국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둘은 깜짝 놀라 대화를 조금 더 이어나갔다. 대치동과 압구정에서 영어를 가르쳤었다고 한다. 나도 캐나다에 오기전까지 압구정과 대치에서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 재학중인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왔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넓은 서울에서 그것도 같은 지역에서 영어를 가르친 영어강사라는 사실이 교사와 학부모로 만난 어색한 첫 만남의 벽을 무너뜨릴줄은 몰랐다. 아직 영어가 서투른 에셀이에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필요한것이 있으면 도와줄테니 언제든 이야기하라며 유머섞인 한국어로 겪려의 말도 잊지 않으셨다. 새 나라, 새 학교에서 시작하는 첫 학기의 첫 수업에서 만난 Vanry 선생님 덕분에 무언가 안심이 되었다. 가뜩이나 캐나다에서 시작하는 첫 학교에서의 삶이 에셀이에는 잔뜩 긴장감을 안겨주었을텐데 한국인 아내를 둔 선한 인상의 선생님 덕분에 에셀이도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에셀이를 교실 안으로 들여보내주고 난 학교를 나왔다. 

 

다음날인 금요일 아침, 에셀이를 학교에 내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라엘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위해 함께 학교로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대략 5-6분이 걸린다. 아이들 등교는 차로 데려다주는 부모님들도 있고, 도보로 등교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보통은 3,4학년까지만 부모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고, 5학년 이상 학생들부터는 스스로 등교를 하는듯 하다. 이 곳 학교는 한국의 학교와 다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각자의 교실로 가는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 교실문이 있다. 즉, 학교건물 안에도 교실로 통하는 문이 있고, 학교 밖에도 야외로 통하는 교실문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쉽게 밖으로 나가 야외활동을 하고 또 쉽게 들어올수 있도록 설계를 한것 같다. 교실문이 열리는 8시 50분이 되기전까지는 아무도 교실로 들어오지 못하고, 8시 50분이 되어야 모든 교실의 문이 학교의 벨이 울림과 동시에 열린다. 그래서 조금 일찍 도착한 아이들은 교실 밖인 야외에서 서서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그때 들어간다. 

 

오늘은 수업시작 시간보다 살짝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약 5,6명의 아이들이 먼저와서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라엘이도 그 대열에 합류해 줄을 섰다. 그때 라엘이의 앞에 서있던 한 남자아이에 시선이 갔다. 무언가가 가득 담긴 커다란 쇼핑백을 두 개나 들고 서있기에, 혹시나 오늘 학교에 가져와야 할 준비물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졌다. 분명히 라엘이는 나에게 준비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쇼핑백에 가득 담아온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인데, 반의 모든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을 일일이 포장해서 가져왔다고 했다. 다른 쇼핑백에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먹을 간식도 담겨있었다. 한 두명도 아니고 스무명이 넘는 반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그것도 하나하나 다 포장을 해서 가져온 그 아이를 보면서 이것이 캐나다의 생일문화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마침 그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와 그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걸었다. 얼떨결에 그 아이 앞에 있던 나와도 인사를 건네고 아이의 생일이라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줄 선물과 간식을 가져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날 오후, 아이들이 하교하기전 간단한 식료품들을 사놓기위해 집 근처의 한 마트에 갔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 마트의 입구를 나오려는데, 어디서 본듯한 한 남성이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다 나와 마주쳤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스쳐지나다가 우리는 얼굴에 적당한 미소를 띠며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 아침 생일선물을 한 가득 가져온 아이의 아빠였던 것이다. 얼떨결에 우리는 마트의 입구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4학년인 저희 아이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온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어요. 이 학교가 저희 아이의 캐나다에서의 첫 학교이자 이번주가 첫 수업날입니다.' 내가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밴쿠버로 오기 전까지 자신의 가족도 한국에서 약 7년을 살다 왔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이 도시, 저 도시들을 옮겨다니며 생활했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최대한 느끼고 경험했었다고 했다. 캐나다로 온지는 얼마되지 않았고, 아내가 캐나다인이어서 캐나다로 다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본인은 미국인인데 태어나 자란곳이 필라델피아라고 덧붙였다. 그 순간 내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 왜냐하면 나와 내 아내는 결혼후 1년만에 함께 필라델피아로 가서 그 곳에서 잠시 거주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인 나는 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고, 필라델피아가 고향인 그는 나의 고향인 서울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셈이다. 그도 참 신기했던지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떠들었다

 

밴쿠버라는 작지 않은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분명 지리적으로는 크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참으로 세상은 넓고도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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