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
| 4 | 5 | 6 | 7 | 8 | 9 | 10 |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책읽어주기
- 놀이가답이다
- 케이
- 독서
- 큐티아이
- 건강한밥상
- 에셀이건강식단
- 맛있는식사
- 우리아이독서
- 요리하는아빠
- 에셀이저녁식사
- 놀이와활동
- 우리아이식단
- 육아하는아빠
- 독서가답이다
- 라떼파파
- 책읽기
- 독서가힘이다
- 건강한식단
- 우리아이건강식단
- 에셀이놀이와활동
- 독서의힘
- 육아대디
- COVID-19
- 요리는즐거워
- 우리아이놀이
- 에셀이식단
- Preppie Look
- 건강한식사
- Preppies
- Today
- Total
'케이'의 세상을 보는 noon
#31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 본문

'말 그대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것이 우리 인생이다.'
아내는 약 2주가 조금 넘는 기간동안 한국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 간지 3일째 되는 날 아내에게서 페이스톡이 왔다. 그리고 갑자기 나의 작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살면서 나의 작은 아버지 이야기는 꺼낸적이 거의 없는듯 한데, 작은 아버지께서 혹시 폐암으로 투병중인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심상치 않은 이야기의 앞에는 발단이라는것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사실 난 나의 작은 아버지께서 암투병을 하셨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에 소식을 전하고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때는 먹을 것을 사서 우리집에 종종 놀러오시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아버지의 바로 아래 동생이기에 젊은 시절에는 형을 만나러 오시곤 했던듯 하다. 내가 조금씩 커 가면서 작은 아버지도 가정을 꾸리고 소위 먹고살기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집에 오시는 빈도도 줄기 시작했다. 내가 20대 시절부터는 가족과 친척들의 대소사가 있을때만 얼굴을 잠깐 보는게 다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으로 작은 아버지를 뵈었던때가, 약 7,8년전 큰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인 '홍석'이 결혼식때였던것 같다. 물론, 자주 소식을 전하고 사는 사이가 아니어서 작은 아버지와 인사만 나눈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내겐 작은 아버지이고, 나의 아버지에게는 남동생이다. 어린시절에는 한 지붕에서 함께 자란 형제였으니 피로 매정진 혈육이다. 물론 결혼을 하고 각자의 가정이라는 것이 생기면 어릴때만큼의 재미난 추억거리를 만드는것은 자연스레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면, 누군가 먼저 삶의 종착역을 향하는 순간이 와도 느껴지는 슬픔은 어릴때 느끼던 그것보다는 덜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에게는 돌봐야 할 각자의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때와 다르게 사회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그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도 줄어들게 된다.
다시 첫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내가 나의 작은 아버지의 폐암 투병이야기를 꺼냈을때 나는 사실 직감하는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내의 말을 가로채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직감하고 있는 것과 아내가 나에게 하려는 이야기가 같은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작은 아버지께서 폐암 투병을 하셨었고 어제 세상을 뜨셨다고.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오랜 세월 소식을 전하고 살아오지는 않았어도 내 아버지의 동생이자 내게는 작은 아버지이고 어릴때는 나와도 잘 놀아주시던 좋은분이셨으니까. 70이 되시기 전에 세상을 뜨셨으니 요즘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비교적 일찍 가신 편이다. 그 소식을 전해듣고 비교적 덤덤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내 혈육중 누군가가 운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그 기간이 얼마든 슬픔이라는 감정과 맞서야 한다는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아주 잠시동안 작은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내 주변에서 운명을 달리한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약 10년전 생각지도 못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래서 가족들을 포함한 그를 아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한 사람의 죽음과 약 1년 6개월간의 암투병을 끝내고 6년전 돌아가신 다른 한 사람이 내 머리속을 스쳐갔다. 두 분 모두 내 혈육들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의 죽음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곱씹게 된다. 특히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때, 스트레스의 정도가 너무 심해 가족 누구에게도 말 못할때 난 그의 죽음의 이유와 과정에 깊게 빠져들고는 했다.
이 글에 자세하게는 다 밝힐 수가 없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의 죽음은 나에게 큰 교훈을 준다. 물론 두 사람의 '세상의 떠남'의 성격은 분명 다르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그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인생의 많은 좋은 일들을 함께 나누며 기뻐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난다. 시기는 각자 다르고, 세상을 떠나는 방식 또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남아서 삶을 계속 이어가며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은 여전히 가끔씩 그들의 '먼저 떠남'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한다.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날수록 나 역시 내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점점 연로해가시는 내 부모님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한국을 떠나기 전과는 달리 캐나다에 오고 나서부터는 부모님 생각이 더 자주 난다. 70이 훨씬 넘으셨고 이제는 70대 중반을 지나고 계시는 두 분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는 앞으로 살아가실 시간이 더 짧다는걸 알기에 가끔은 내 마음이 초조해지고 무거워진다. 이른 나이에 먼저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도 주위에는 많고, 그분들의 감정을 다 이해는 못한다. 아직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언젠가는 내 부모님도 먼저 세상을 뜨신 분들처럼 그 길을 갈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니까.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소천', 즉 '천국에 간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 순간을 내가 맞닥드린다면, 과연 나는 그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일만한 크기의 그릇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내 마음이 그 상황을 과연 감당할 수가 있을까. 이것이 요즘 잠자리에 들면 내 머리속에 파고드는 생각들이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기억도 나지 않지만, 불이 꺼진 밤, 침대에 누워 그날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종종 드는 생각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캐나다 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35. Downtown Vancouver (7) | 2026.01.21 |
|---|---|
| #34. 새로운 땅에서의 반 년을 돌아보며 (6) | 2026.01.12 |
| #30 옛 친구를 밴쿠버에서 (0) | 2025.11.04 |
| #29 가을을 지나 겨울로 (0) | 2025.11.02 |
| #27. 여기는 캐나다인가 인도인가 (3) | 2025.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