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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살기

#32. 밴쿠버는 레인쿠버

Kay Im 2026. 1. 7.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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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소리는 번역이 필요없다.' 영국의 철학자 '앨런 왓츠'가 한 말이다.

 

비는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또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그런 존재일것이다. 난 사실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눈이 내리는것 보다는 비가 차라리 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는 내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손님'같은 존재다.

 

밴쿠버의 가을과 겨울은 비를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만큼 이 곳 밴쿠버는 비가 많이 내린다. 작년 봄에 밴쿠버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온 한 지인을 만났는데, 그가 이야기하길, '밴쿠버는 가을, 겨울 비가 많이 내려요' 라고 했던게 생각이 났다. 사실 그때는 그가 실제보다 조금 과장되어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여름보다는 좀 더 자주 내리는편 일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매일의 하늘이 파랗고 뭉게 구름이 몽실몽실 떠있던 여름과 초가을이 지나자 어느샌가 가을을 알리는듯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 하루이틀 지나면 맑은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었던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고, 혹 비가 그치는 날에도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과 먹구름으로 뒤덮여 세상이 온통 어둡고 흐린날이 계속되었다. 한국의 여름처럼 소나기가 오는것처럼 시원하게 뿌렸다가 개는것이 아니라 가랑비 내리듯 하루종일 주저리 주저리 내릴뿐이다. 게다가 믿기지 않겠지만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져서 저녁을 건너뛰고 밤으로 바로 넘어간다. 이 곳에서 오래 사신 누군가가 그랬다. 밴쿠버의 겨울은 오후 4시부터 저녁이 시작이라고. 10월의 하순으로 넘어가면서 이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밴쿠버의 가을과 겨울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면 '매일 비가 내리는 밤이 긴 도시'라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하루종일 흐리고 비가 내리며, 저녁과 밤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보니 이 곳 밴쿠버에서는 야외활동으로 할 수 있는것이 거의 없다. 야외 농구장에서 농구를 할 수 있는것도, 공원을 산책하거나 뛰는것도, 놀이터에 나가 놀 수 있는것도 그 아무것도 없다. 물론 그 활동들이 불가능한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불편함과 개운하지못함을 감수해야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실내활동으로 눈을 돌리고, 그 덕분에 실내에서는 할 수 있는것들이 상당히 많다. 가을과 겨울에는 실내 쇼핑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더 많은 손님들을 볼 수 있으며, 동네의 Recreation center에는 각종 스포츠나 헬스 그리고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물론 한국에도 주민센터나 체육센터에 다양한 행사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지만, 내 생각에 이 곳 밴쿠버는 한국보다 훨씬 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다. 특히, 아이스하키를 빼면 어디가서 이야기가 안될만큼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정말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스하키를 배우거나 즐길 수 있는 아이스링크가 동네마다 있으며 수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리그안에서 자유롭게 아이스하키를 즐긴다. 

 

캐나다에 왔으니 우리 아이들도 겨울스포츠 하나쯤은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두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아이스링크에 갔다. 아이스하키는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시작해야하기에 진입장벽이 높아, 상대적으로 편하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게 해주었다. 한국에 있을때 잠실 롯데월드와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몇 번 스케이트를 타본적이 있어서 에셀이와 라엘이는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겨울이어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것이 아니라 하루종일 내리는 비때문에 야외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11월과 12월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pop-up으로 열리는 댄스 클라스, 무비 나이트, 스케이팅같은 활동을 즐기며 보냈다. 가끔은 극장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팝콘을 먹으며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아케이드에서 신나는 게임도 즐기며 주말을 보내곤 했다.  

 

얼마전 주일설교에 목사님께서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하셨던것이 생각이 난다. 

 

   "밴쿠버는 겨울에 매일 비가 내려 레인쿠버라고 부릅니다." 

 

그때가 11월 초 였던것 같은데, 그러면서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라고 덧붙이셨다. 그 후로 거의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고, 여전히 1월 마지막째주인 겨울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마도 최소 열흘은 된듯한데,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하루,이틀 지속되다 다시 비가 내리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최소 열흘 넘게 햇살이 가득한 날이 지속되고 있다. 그 기나긴 레인쿠버가 이제 드디어 끝난것인가 살짝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밴쿠버에서의 첫 가을이 지났고, 이제 첫 겨울을 지나고 있다. 겨울이 시작된지 불과 엇그제 같은데, 이제 이 겨울도 불과 한 달 남짓만을 남겨두고 있다. 비와 함께 시작된 밴쿠버에서의 가을과 겨울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비록 가벼운 우울함과 심심함을 주기는 했지만, 그 덕에 밴쿠버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한국의 겨울에 감사함을 가졌고, 또한 이 곳에서 다양한 실내 활동을 즐기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옛 속담에도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는 법이라고 했듯, 비라는 존재는 분명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이지만, 그 불편함을 주는 존재 덕택에 이전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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