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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ketch

과거로의 회귀

Kay Im 2017. 8. 2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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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ay Im

Antigua, Guatemala




차를 세워두고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보이는 사열대와 그 뒤로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국에 가면 꼭 한번은 이 곳에 와보고 싶었다.


몇 년 되지않은 듯한 깨끗하고 현대적인 건물들. 그러나, 어릴적 친구들과 뛰놀고, 공을 차던 이 운동장과 건물의 위치, 그리고 뒷 골목으로 연결되던 조그만 학교 후문은 약 20년전의 쬐그만 한 소년의 추억을 되살려 놓는다.


방학이라 학교는 썰렁하고, 간간히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만 학교에 울려퍼질 뿐이다. 천천히 운동장을 밟으며 오래전 이 곳에서 공부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후문쪽으로 걷고 있고, 난 그 곳을 아주 천천히 빠져나온 후, 다닥다닥 붙어있는 낡고 오래된 집들 사이사이를 걸으며 옛 기억들을 더듬어본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때나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만큼 거의 그대로인 이 동네. 몇몇의 친구들이 살았던, 그래서 가끔 지나던 이 좁은 골목들.


천천히 걷다보니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간듯한 낡은 가구들과 집안 소품들이 골목 한 켠에 줄지어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집들에는 붉은 라커로 눈에 띄게 씌여진 '공가'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띈다. 아마 많은 가구들이 이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으리라 짐작해본다.


 

좁다란 골목을 빠져나오니, 나이가 지긋하신 두 할머님들께서 집 앞 계단에 앉아 복숭아인지 자두인지를 드시고 계시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초등학교 3,4학년때 일명 '얼음땡'이라는 놀이를 하며 뛰놀던 놀이터가 보인다. 순간, 나는 세월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어 상대적으로 놀이터가 작아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물리적으로 놀이터의 면적이 정말로 작아진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참 신기하기만 했다. 그토록 넓어보이던, 그래서 마음껏 뛰놀며 장난치던 그 곳은 이제 나같은 성인 한 명이 불과 몇십 걸음 걸으면 놀이터 한 바퀴를 다 돌을 수 있는 그런 아주 조그마한 쉼터같은 곳으로 변해있다. 동네 어른들이 잠시 앉아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곳으로 말이다.


 

방학이라 내가 지금 걷는 이 오후시간쯤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뛰놀고 있어야 하는것이 일반적임에도, 이 놀이터에는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나이가 지긋하신 한 중년 아저씨 한 분만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계신다. 난 발걸음을 다시 옮겨 다른 골목쪽으로 향한다. 이제는 '공가'라고 씌여진 집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점점 사람들이 사는 동네처럼 느껴지질 않고 왠지 낯선 곳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순간, 스쳐가는 생각은, 아마도 이 동네도 이제는 현대적인 아파트들이 들어서는 일명 '뉴타운'이라고 하는 재개발 지역으로 시에서 허가가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돌아다니던 이 골목 저 골목을 옛 추억들을 하며 천천히 걷는 순간, 내 눈 앞에는 저멀리 우뚝 서있는 남산타워와 그 아래 옹기종기 붙어있는 수 많은 집들과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서울 시내를 파노라마 사진 한 장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많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현대적으로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 내가 지금 서있는 이 곳, 이 동네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20년전의 모습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물론,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그 때의 추억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기에는 조금도 손색이 없다.



조금전에 걸으며 뵈었던, 두 어른신 곁에 야쿠르트를 배달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두 분의 대화속에 잠시 동참하신듯 하다. 나는 그 분들의 대화중에 염치를 불구하고 여쭙는다.


"저..혹시 집집마다 씌여진 '공가'라는 단어가 이 동네가 곧 재개발에 착수된다는 뜻인가요...?"


염치를 불구한 내 질문에 그 분들은, 아직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는듯 조금은 황당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시곤 다시 하시던 대화를 이어가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 년내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성냥갑같은 아파트들이 내가 지금 서 있는 바로 이 곳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겠지...그 때가 되면, 현재 이 동네의 모습은 예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아마도 기억히 흐려있겠지. 마치, 이웃집이 허물어지고 새로 지은 건물이 들어섰을때, 예전의 그 집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것처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내가 친구들과 시간가는줄 모르고 뛰놀았던 이 동네, 꾀죄죄한 얼굴로 여기저기 누비며 돌아다녔던 그 골목 골목들,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네 주민들의 애환이 그려진 그 얼굴들을.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이 동네의 땅을 앞으로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밟는것은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곳에 왔을때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나에게는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한 동네로 변해 있겠지. 사실 지금이나 그때나 장소는 똑같은데도 말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 변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하는 바램을 자아내는 그런 때들도 있는 법이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나는 다시 차를 세워둔 학교 운동장으로 가기위해 학교 후문을 빠져나와 걸었던 처음 그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비에 젖은 성냥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다. 난 그 꼬마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번 살짝 웃어준다. 한 낯선 아저씨가 웃어주는 데 익숙치 않은 모양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약간은 거리감을 두는 것 같다. 후문으로 들어가는 나를 그 꼬마아이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듯 내 옆으로 따라와 걷는다. 그리고는 나에게 묻는다.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 꼬마의 물음에 난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응, 한 20년전쯤 그러니까 네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아저씨는 이 학교에서 축구도 하고, 공부도 했었단다."


그 꼬마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약 20년전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던 그 꼬마아이의 모습에서 약 20년전 천진난만한 얼굴로 운동장을 뛰놀던 나의 어린시절의 모습을 본다.



어쩌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지금의 동네의 모습은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 옷에 묻었던 흙과 먼지들,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들 그리고 내 유년시절의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동네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간이 흘러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있는 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정말 발걸음을 옮길 시간이다. 나는 세워두었던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교정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6년간의 추억이 녹아있는 이 학교를 뒤돌아 보며, 천천히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2008년 8월 12일 오후의 햇살은 눈이 부실정도로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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